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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보 (2013.3.24. 에버노트) 

 
바람났다. 평소와 다를바 없는 지루한 하루였지만, 우연한 계기 본 벽보는 나에게 잠시나마 설렘을 주었다.
에코디자이너 교육코스. 고용부에서 전액지원하는 그래픽학원 코스 벽보가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던 나의 눈에 꽂혔다. 이것 저것에 휩쓸리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아직 나에게 환상적인 직업으로 남아있나보다.
집에와서 인터넷 검색창에 '에코디자인'을 써넣고 검색을 하면서, 괜히 가슴이 쓰렸다.
 
 친구가 이력서를 쓰면서 '블랙컨슈머'에 대해 물어봤다. 경영학과 출신인 내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말을 할 수가 없었다. '블랙컨슈머? 프로슈머는 들어봤어도 블랙컨슈머?' 이로 인해 나는 허무함을 느꼈다.
왜 경영학을 진학한 것인가. 비록 부모님이 추천해주신 학과였어도 나에게 맞지 않으면 전과를 하든 편입을 하든 조치를 취해야했다. 앉아서 주는 것이나 받아먹으면서 사회구조, 집안형편, 나의 현재 수준을 탓하며 노력해도 내가 생각하던 환상과 같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 내 학과와 다른 길을 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3d 애니메이션학과. 방 안쪽에서 시간 흘러가는대로 쭈그려 놀다가, 영화 팅커벨을 보고 열정이 확 불타오른 것이다. 21살의 치기로 무작정 유학을 해야한다면서 급하게, 단시간에 결정하고 부모님께 떼를 써서 서울로 올라갔다. 상경 후 넘치는 열정에 그리고 꿈에 다가갔다는 마음에 내 자신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내 곧  미술학원에서 내 수준을 절감하고 또 만성의지부족 성격이 내 발목을 잡아, 내 열정은 사르륵 꺼졌다.
 
 꿈을 잃고나서 늘 그래왔듯 무의식이 나를 지배했다. 하루가 지나면 곧 흐지부지해지는 계획을 매번 세우고 매번 허물었다. 생각없이 살았다는 말은 나를 표현하는 것 같다. 아니 무엇인가 생각을 했겠지만 영양가 없는 패스트푸드와 같은 것들이었다.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고 내 대학생활의 절반 이상을 어둡게 보내고 졸업했다.. 처음부터 무모하고 오만한 도전이 내 인생의 한 번뿐인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나에 대해 기대를 거두고 그저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우울하면 웃긴 동영상을 봤고, 자극적이고 다른 생각을 잊기 위해 인터넷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 순간이 힘들더라도 내 몸과 정신을 괴롭히며 해답을 찾았어야 한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해 볼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직도 가슴이 뛸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도전하는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지만 아직은 어설픈 나에게 참을성이 필요할 것 같다. 공무원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이뤄내면 그 다음 꿈에 도전하는 것이 지금 나의 목표다. 아직 젊으니까 길게 보고 초조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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